2017.11.22 20:30
“가데스 바네아”는 남쪽의 바란 광야와 북쪽의 신 광야 사이에 있다. 남쪽(바란광야)에서 보면‘바란 광야 가데스’이고(26절), 북쪽에서 내려다보면‘신 광야 가데스’이다.(20:1, 27:14) 가데스는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절망으로, 신앙이 불신앙으로 바뀌어진 곳이다. 믿음의 삶은 바란 광야 가데스가 아니라, 신 광야 가데스의 삶이다.
정탐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탐 보낸 목적은 약속의 땅의 확인이다. 모세도 말한다. ‘...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20절) 하나님의 은혜로서 포도를 가져온다. 포도는 땅의 비옥함을 상징한다.(창49:11) 그러나 정탐꾼 중 10명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다.(31-33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불신앙이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신1:30,32)
하나님을 불신하는 말 중의 하나는 “그러나”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28절) ‘그러나’는 바란 광야 가데스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러나 신광야 가데스에 어울리는 말은 “그래도”이다.(단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합3:17 - 비록... 없을지라도!) 우리가 내뱉는 말 중에 ‘그러나’를 ‘그래도’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약속의 땅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여호수아 :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16절) 모세는 ‘호세아’(그가 구원하신다)의 이름을 ‘여호수아’(여호와가 구원하신다)로 바꾸어 부른다. ‘여호수아’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된 말씀은 아말렉 전투(출17:8-13)이다. 여호수아는 그의 이름대로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자였다. 그런데 아말렉 전투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신다.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출17:14)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이름은 ‘구원’이 아니라 ‘여호와’였다. 우리 역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잃어버리면 그곳이 인생의 실패의 장소 ‘바란 광야 가데스’이고, 믿음으로 받은 이름을 기억하고 살면 그곳이 승리의 자리인 ‘신 광야 가데스’일 것이다.(요일5:4)
갈렙 :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6절) 사실 갈렙은 그나스 사람이다.(민32:12) 그나스는 에서의 맏아들의 자손으로 에돔 사람이었다.(창36:10-11, 42) 이런 정통 후손이 아닌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이름의 뜻은 ‘개’이며, 하나님의 충실한 종을 상징한다. 모두가 ‘그러나’를 말할 때 갈렙은 외친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절) 갈렙은 이성보다, 다수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말을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헤아리는 충성과 상황에 변하지 않는 신뢰의 마음을 기뻐 받으신다.(잠25:13) 사도 바울도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1:6-7)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용기를 회복하여 약속의 땅 가까이에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