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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찔레(삼상 18:6~9)

2007.12.28 23:08

홈지기 조회 수:3082

6)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9)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삼상 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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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의 마지막 주일에 사울과 다윗을 생각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다윗은 그 신하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사울과 다윗을 두고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였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블레셋 거인 장수 골리앗을 다윗이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보다 다윗이 더 위대하다고 노래했습니다. 꽃에 비유하자면 다윗은 장미꽃이고 사울은 찔레꽃이란 말입니다.

  장미꽃은 크고 탐스럽습니다. 찔레꽃은 작고 볼품이 덜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찔레꽃보다는 장미꽃을 좋아합니다. 이왕 꽃이 될 바에는 찔레꽃보다는 장미꽃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장미꽃은 한번 흐드러지기 피고는 그만입니다. 그러나 찔레꽃은 피었다가 지고, 또 피었다가 집니다. 계속해서 피고지어 오랫동안 그 아름다움을 보게 해 줍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흐드러지게 피는 붉은 장미를 보고 싶은 사람은 장미를 심고 키울 것입니다. 그러나 두고두고 꽃이 피는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사람은 찔레꽃을 심고 키울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크기나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고 모든 것을 결정하려합니다. 또 그 기준 속에서 모든 것을 돌아보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다 한 기준 속에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장미꽃 같이 살기 원하는 사람에게 오래 핌이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피는 찔레꽃같이 살기 원하는 한 순간의 흐드러짐과 크기가 잣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장미꽃이 있어야 합니다. 찔레꽃도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를 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평가하며 그 크기만을 보려한다면 결코 옳은 평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의사로 살아간 슈바이처가 큰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보다 결코 못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윗일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다윗이어야 하듯, 사울은 사울이어야 합니다. 사울인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울은 사울로서 자기의 길을 가며,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 됩니다. 사울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윗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다가 악신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해를 누구보다 지혜롭고 복되게 마무리하시고, 소망이 넘치는 새해를 맞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07년 12월 30일, 교육자료-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복교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13길 9(신교동), TEL.02-735-5809 FAX.02-737-3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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